블로그를 대나무 숲으로 쓰는 시간이 돌아왔다. 속시원히 말도 못 하는데 글로 쓸 곳이라도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늘 생각한다. 오늘도 의식의 흐름.
케케묵은 메신저 하나를 드디어 탈퇴했다. 진작 했어야 하는 건데 생각보다 너무 늦어져서 후폭풍이 더 심한 것 같다. 한두 달에 한 번, 혹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가끔 울리는 메신저에, 올 한 해는 유독 스팸 메시지도 비슷한 횟수로 왔다. 당신들이 찾는 코리안 디자이너 킴 같은 사람 여기 없어요.
메신저를 탈퇴하기 전에 중요한 메시지들을 백업하고 싶어서 친구 B와의 대화를 쭉 훑어봤다. 자매들을 안 만큼이나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이역만리 타지에 있어도 최소 일 년에 두 번은 메신저를 울리던 대상 중 하나였다. 매번 이 메신저, 저 메신저 배회하다가 만 3년 동안 한 메신저로만 이야기를 나눴는데, 돌아보니 문득 고마운 메시지들이 너무 많다. 3년이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었다는 사실에도 새삼 또 감동. 결혼 소식이 들리던데 가능하면 참석하고 싶다. (물론 초대는 그들의 몫🙂) 이 친구가 현 피앙세와 연애 초반 때 마침 나도 네덜란드 워홀을 가있던 터라 인사를 했었고, 그 후로도 두어 번 함께 식사를 했었는데, 내가 자기 여자친구를 처음 소개해준 친구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살면서 내가 네덜란드를 또 갈 일이 있을까, 가고 싶어지긴 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방문하게 될 수도 있겠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안 봤지만 이건 정말 어떤 의미로 희대의 명대사인 것 같다. 문장 하나만 봐도 벌써 스트레스 받아. 내가 다 트라우마 생길 것 같아.
5월쯤, 심리상담을 받았더랬다. 상담사랑 티키타카도 안 되고 나도 도무지 마음을 열 수가 없어서 오히려 매번 찝찝한 마음만 안고, 별다른 소득 없이 상담을 조기종료했더랬다. 그런 상담에서 딱 하나 얻어온 것이 있다면, 혼자 우울해지고 땅굴 파면 아무 도움도 안 되니 차라리 화를 내는 게 낫다는 거였다. 속에 자꾸 화가 쌓이면 그것도 건강하지 않은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상담사는 "그걸 폭력적으로 드러내면 문제지만, 일이 안 풀릴 때 화가 나는 건 자연스러운 거예요."라고 했다. 그렇구나. 참고만 있으면 결국 스스로만 갉아먹을 뿐,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다.
일에 미쳐서 사는 것 같은 이런 생활이 지겨울 때가 당연히 있다. 그런데 정작 시간의 공백이 생기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돈을 적게 받더라도 워라밸이 우선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문득 그동안 내가 일과 삶이 아닌 N잡의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지금 당장은 일 외에 신경 쓸 것이 없어서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은데, 곧 시간의 공백이 생기면 다시 감당하지 못할까 봐 좀 두렵다. 올해 상반기가 나에게는 좀 그런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게 내가 궁극적으로 살고 싶은 삶은 절대 아닌데, 나는 분명 삶을 즐기며 살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되었나.
다음 스텝으로 힘차게 도약해야 할 때 매번 이렇게 힘이 빠져서 인생이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타이밍이 너무나도 별로다. 진작 정리했어야 할 것들을 너무 오랜 시간 유예를 한 나의 잘못이리라. This too shall pass.
작년 이맘때쯤 내 주변에 참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었는데, 다시금 잊고 살고 있었다. 문득 내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은 요즘이다. 설사 그게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 주변에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들이 내 사람의 실체라고 믿고 싶다. 스스로 이대로 괜찮은가 싶을 때 "너는 그 자체로 이미 좋은 사람이야, 네가 자랑스러워"라고 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아마두>는 좋은 노래이고, 그중에서도 팔로오빠의 파트는 별다른 미사여구도 없이 내 마음을 울리지만, 연말이면 "내년엔 잘 될 거야 아마두!"보다는 "올해도 잘 살았다!"라고 외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꼭 그렇게 외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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