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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색하는 연습장

어느 평일 저녁

by Heigraphy 2021.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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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 저녁이 모처럼 비어서 적어보는, 오늘도 사색의 글.

  공연장 언니들을 안 지도 벌써 5-6년이 되었다. 언니들이 지금의 내 나이쯤일 때 처음 만났는데 시간이 참 빠르네. 그때의 언니들은 참 커보였는데 나는 언니들의 나이가 됐음에도 여러모로 아직 불완전하다고 느낀다. 내가 스스로를 이만하면 다 되었다고 느끼는 날이 오기나 할까.
  공연장을 한창 다닐 때는 같이 사는 친오빠 얼굴보다도 더 자주 보다가, 공연을 안 가면서부터는 그야말로 가끔씩 오래 보는 사이가 되었는데, 언제 어디서 봐도 참 반가운 사람들이다. 사는 건 다 다르지만 어떤 결이 비슷해서인지 언니들과의 대화는 다 흥미롭고 배울점이 있고 새겨들을 것들이 있다. 취미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나 유쾌하고 유익합니다.

  마음이 편안할 땐 밖에서 음악을 잘 안 듣는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걸어다니면서 잘 안 듣는다. 오히려 주변 소리에 귀기울이기 바쁘다. 내 인생에선 네덜란드에서 지낼 때 그랬다. 서울에서는 세상의 잡음이 싫어 늘 귀 터지게 볼륨 높이며 듣다가 급성난청 판정 받을 뻔하고 그랬다. 이곳은 참 애증의 도시이다.
  한 3년 전의 나만 해도 '한국'보다는 '서울'을 그리워했고, 전국 어디를 가도 머무는 곳일 뿐, '터전'을 잡는다는 것은 인생 선택지에 없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놀았던 이곳과 비교하면, 어느 도시를 가도 성에 차는 곳이 없었기에.
지금은 굳이 서울에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계속 맴돈다. 부산이든 강화도든 짧게나마 방문해서는 슬쩍 이 동네의 분위기는 어떤지까지 느껴보려 한다. 물론 하루이틀 가지곤 택도 없는 소리지만. 서울에서 혼자 살아보는 것도 어쩌면 젊을 때나 해보는 거지 싶다가도, 이곳에 학교나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사수하고자 했던 문화생활도 이제는 어차피 잘 못 하는데 여기에 굳이 남을 이유가 있나 싶다.
  언니들도 탈서울을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한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내려가서 부모님댁 근처에서 살 수는 있을 것 같다며. 그러고보니 서울에서 나고 자란 건 나 하나뿐이었다. 서울 벗어나면 연고도 없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딘가로 간다면 나는 평생 서울을 그리워하며 살겠지.

  올해 초에 분명히 내 인생의 큰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눈 앞의 위기를 넘기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맨날 삶이 존버의 연속인가 싶다. 3개월만, 6개월만, 하고 사는 거지 매번. 황룡사 9층 목탑의 정신을 마음에 새겨야지 하면서도, 뭐 때문인지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진다. 요 근래 내가 나를 돌아볼 시간이 있긴 있었나. 이번 버티기가 끝나면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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