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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색하는 연습장

5월의 잡념들

by Heigraphy 202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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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의 흐름.

 

  언젠가는 글로 남겨야지 생각만 하던 것을 미루고 미루다 보니 벌써 6월 중순이 다 되어 간다. 5월은 책도 한 권 못 읽고 결국 책 리뷰도 못 올렸다. 마음에 부채감 같은 게 쌓였다. 6월은 더 바쁠 것 같은데.

 

  사람에게 많이 닫혀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잘 안 믿고, 처음 관계를 맺을 땐 꽤 방어적이고, 누구에게도 잘 기대려 하지 않는다. 내 얘기를 잘 안 하는 것도 그 속성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덕분에 내가 힘들어질 때도 있지만, 별로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마음을 열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한테나 잘하면 되지. 이건 결국 "나는 그냥 닫힌 채로 계속 살겠습니다-"라는 의미이려나.

 

  사람은 안 믿는데 가끔 겁대가리가 없어질 때는 있다. 특히 여행 가서 사람 쉽게 만날 때. 물론 여행이라는 상황 자체가 좀 특수하긴 하지만. 그렇게 만나서 좋은 인연이 훨씬 많았지만 가끔 개똥 같은 인연도 있다. 어디서든 다시는 겁대가리 없이 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5월의 어느 날.

 

  '말의 힘'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생각만 하고 입 밖으로 뱉지 않는 것은 생각했다고도 할 수 없다나?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몰라도 무슨 뜻인지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나는 차라리 대나무숲에 외치듯 이곳에 쓴다. 블로그를 꾸준히 쓰는 이유는, 개인 기록의 의미도 있지만, 머릿속이 복잡할 때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도 크다. 그래서 가끔 이런 잡념 글이 올라오는 거지.

 

  '말의 힘'만큼이나 '글의 힘'도 크다.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휘발되는 말보다 더욱 힘을 갖는 것은 글일 수도 있다. 나는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 일가처럼 나를 연구하고 기록해주는 사학자도 따로 없으니 내가 나의 역사를 이곳에 남기는 수밖에. 마지막까지 기록을 멈추지 않았던 정약용 선생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간다.

 

  가끔은 면접 같은 곳에서마저도 나를 설명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냥 내가 남긴 기록들을 꾸준히 봐준 누군가가 '이 사람은 대충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구나' 하고 알아서 알아주길 바랄 때가 있다. 물론 나한테 그렇게까지 관심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테니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

 

  본인을 포함하여 누군가의 취향을 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므로. 생각보다 자기 취향이 뭔지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다.

  뭔가를 보고 "이거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건데"라고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대표적으로 여행 가서 선물을 살 때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의 취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알고 있을까. 근데 나는 여전히 엄마의 취향은 잘 모르겠다. 가끔 그녀의 취향 없음(혹은 취향 없어 보임)은 나와 오빠 때문은 아닌가 싶다.

 

  드라마 <어느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의 동경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내가 동경의 상황이었다면 사람은 다 싫고 인생 현타 와서 세상을 멸망시키든 내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든 둘 중 하나였을텐데.

  사람에게 확신을 갖는다는 건 어떤 걸까. 사람에게 직진할 수 있는 용기란 어떤 걸까. 닫혀있는 나로서는 아마 평생 모를 것 같다. 더군다나 내가 여유가 없고 인류애까지 파사삭인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 믿음과 용기가 부럽다.

 

  "뭔 놈의 인생이 맨날 비고, 비가 와도 우산 하나 없고"라며 속상해하는 동경에게 "비가 오면 내가 막아줄게"가 아니라 "비 별거 아니야. 맞고 가면 돼. 맞고 조금만 가면 금방 집이야"라고 말해주는 멸망에게서도 내가 다 위로를 받았네.

 

  처음엔 그저 박보영×서인국 배우의 조합이 신선해서 가볍게 본 드라마인데 매화 예상외의 감명을 받는다. 클립으로 보는 게 이 정도인데 풀 영상을 보면 어떠려나. 드라마 잘 보는 편도 아닌데 요즘은 일 년에 하나쯤은 꽂히는 게 생기는 것 같네. 살면서 월요일이 기대되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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