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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기록/사색하는 연습장

6월의 잡념들

by Heigraphy 202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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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5월의 잡념을 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도 다 지나갔다니. 이대로 눈 감았다 뜨면 (무사히) 9월 4일쯤 되게 해주세요.

 

  6월 블로그가 뜸했던 이유는, 피곤해서 혓바늘 돋고 입천장 빵꾸나는 입병 기본으로 달고 사는 요즘이라 그렇다. 고정 수입이 있는 것에 감사하며 일감 있을 때 나를 갈아넣는 프리랜서의 심정이 뭔지 알겠는데, 알아버린게 왠지 슬프네. 코로나19 백신 맞을 때 면역력이 높을수록 여러 증상들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는데, 아마 나는 지금 맞으면 굉장히 편안하게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워낙 고된 상황, 환경 다 겪어보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잘 살아서 사실 웬만한 걸로 삶의 질이 높다/낮다를 예민하게 느끼지 않는다. 내가 '삶의 질이 낮다'고 느낄 정도라면 아마 집이 없어서 온갖 짐을 이고지고 길거리와 이집저집을 전전하며 지내는 정도는 돼야 할 거다. (네덜란드 워홀 :: 처음 경험해본 카우치서핑의 세계 참고)

  근데 요즘은 좀 느낀다. 집 나간지 기본 12시간 만에, 그리고 요즘은 꽤 자주 13시간은 넘어서 들어오는 생활을 주5일씩 하니 이게 뭐하고 사는 건가 싶다. 하루에 나의 저녁시간 3시간만 온전히 보장받는 것도 이렇게 힘드나. 역시 나는 워라밸이 가장 중요하다.

 

  산뜻한 색의 블라우스를 (20대 초반 이후로 거의 수 년 만에) 두어 장 사두고 정작 아직 택배도 못 뜯었다. 오히려 약간 시위하는 느낌으로다가 위아래 시커멓게 입고 다닌다. 강 같은 평화가 필요한 바로 지금 웃음벨 티셔츠를 입어야 하는 건데 정작 입고 싶은 날엔 입지 못하니.

 

  친구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오랜만에 컴백해선 2주만 활동을 한다고 하길래, 1년에 2주만 일하는 삶이 부럽다고 했다. 물론 그 전에 (심지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력과 준비기간을 포함하면 훨씬 길다는 것을 안다. 정작 나는 1년을 준비하고 2주만 경제활동을 하라면 불안해 미쳐버리겠지. 그 2주간 버는 돈이 얼마이든지 간에. 쉴 때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온전히 쉴 수 있는 방법은 도대체 뭘까.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가 끝났다.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유일한 이유였는데. 삶에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별로 실천하고 있지 못하던 내 머리를 때리며 매주 큰 울림 주던 드라마. 좋은 작품은 나를 마음으로 감상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데, <멸망>이 간만에 딱 그런 작품이었다. 이런 기분 느낀 거 아마 수 년 전에 허클베리피(Huckleberry P)의 앨범 [점]이 나왔을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는 대본집도 나온다는데 <멸망>의 대본집이 나오면 좋겠다. 그들의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보고 싶다.

 

  힘들 때일수록 진짜 걱정할 사람들에겐 말 못하고 오히려 숨어버리는 내 성격은 <멸망>의 동경의 성격과 닮았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면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삶은 유한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까지고 볼 수는 없다는 것. 영원히 살 땐 시한부 같았는데 시한부가 되니까 영원히 사는 것 같다는 '사람'의 말이 오늘도 머리를 때린다. 언제까지고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유한한 삶 안에서 지금 바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이 모든 건 다 아침 출근길에 이것저것 낙서처럼 써놨다가 주말이 돼서야 겨우 정리하는 거다. 퇴근길엔 거의 늘 전투력 111%라서 잡념이 떠오늘 만큼 촉촉해질 수도 없고, 잡념을 메모할 여력 같은 것도 없다. 화가 가득한 노래 귀터지게 듣는 편이지. 근 몇 년 간 대신 화내주는 노래를 별로 업데이트 못 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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