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부산까지 가서 알고자 한 것을 드디어 다 알았냐고 하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많이 걸었고, 보았고, 먹었고, 마셨고, 웃었다. 많이 이야기했고, 생각했고, 날려 보냈고, 붙잡았고, 마음속에서 매듭지었다. 내게 필요한 건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의 대화였나 보다. 보고 싶어서 당장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찾아가도 흔쾌히 만나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하다. 나는 부산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이야기했고, 언니는 다행이라며 기뻐했다. 오랜만에, 평생 안 할 게 아니라면 지금 해야 돼. :)
고등학생 때 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 듣는 게 좋아서 밤만 되면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하루 14-15시간을 학교에서 공부만 하기도 바쁜데 왜 그렇게 다른 사람 사는 이야기가 궁금했나 모르겠다. 내가 너무 쳇바퀴 같은 삶을 사니 더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궁금했나. 지금도 조금이라도 낯선 곳을 가면 가면 그곳 사람 사는 모습이 가장 궁금하긴 매한가지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보여주는 삶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방향은 무엇인지가 늘 궁금하다. 미디어에서 부각되는 삶 말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난 아무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내가 템플스테이를 하듯, 여행을 가듯, 언니를 만나러 한달음에 달려오듯, 그들은 살면서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고 어떤 답을 찾으려 할까? 아마 시국이 아니었다면, 나는 가방 하나 들고 목적지 없이, 최대한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목표만 가진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이 방황과 번뇌는 어쩌면 끝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그럼에도 진정되는 (것 같은) 시기가 올 것이며, 또다시 견딜 수 없는 시간도 올 수 있다는 것 정도를 어렴풋이 알았다. 스스로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지만 어쩌겠나, 애초에 스스로에 있어서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단순해질 수 없는 사람인 걸.
황룡사 9층목탑의 정신을 자꾸만 되뇌며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결국 나아갈 길을 정하고 싶다는 나의 무의식이었을까. 앞으로 또다시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면 부산에서의 시간들을 떠올려야지. 우리의 대화를 기억해야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그곳마저도 돌아보면 결국 나의 길임을 알려준 언니와의 시간에 감사를. 오늘 충실히 걷고, 읽고, 듣고, 보고, 찍고, 쓰다 보면 내일의 내가 또 어딘가로 가있기를.
Copyright ⓒ 2015 Heigraphy All Rights Reserved.
'시각적 기록 > 사색하는 연습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년 개인사 돌아보기 (4) | 2022.01.08 |
---|---|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의 리틀 포레스트 (6) | 2021.11.21 |
질문을 질문하는 여행 (2) | 2021.11.03 |
대나무 숲 (3) | 2021.10.14 |
6월의 잡념들 (2) | 2021.07.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