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생각만 많아 뭔가를 실천해야겠다 다짐했던 어느 날,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나도 언제 한 번 데려가달라는 제안을 했다. 평소에 자주 보던 친구는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매우 흔쾌히 환영해 주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일정을 잡은 게 진심이 느껴져서 고마웠다. 그렇게 겨울 도봉산 신선대 등산을 결정!
원래 등산화를 비롯한 등산 관련 용품도 장비도 아무것도 없는 등린이 중의 등린이였는데, 겨울 산행은 좀 다를 것 같았다. 또, 친구는 등산에 꽤나 진심인 것 같은데 나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갔다가 짐이 되면 안 되니까 내 한 몸은 책임질 수 있게 준비하자 싶어 이참에 등산용품을 몇 가지 구매했다. 등산화, 등산양말, 등산장갑 (from 데카트론) 끝.
친구한테 나 원래 스니커즈 신고 등산했는데 이번엔 신발 등 기본적인 거(basic things) 구매했다고 하니 그건 필수적인 거(essential things)라고 한다. 😂
도봉산 등산 코스
● 등산코스 : 도봉산역→도봉통제소→도봉서원 터→도봉대피소→천축사→마당바위→신선대 (이후 반대 경로로 하산)
도봉산에는 코스가 여러 개가 있는데, 우리는 신선대 최단 코스를 이용했다. 작년 여름에 아빠랑 같이 템플스테이 했던 천축사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되는 경로이길래, 도전해볼 만하겠다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엄청 쉬운 코스는 아니다. 도봉산에는 더 쉬운 능선 코스도 있긴 하니까. 그러나 신선대 최단 코스도 생각보다 할 만했다. 등린이 중의 등린이도 무사히 완주한 곳이니 다른 등린이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정표를 보면 '천축사' 방향을 따라 쭉 올라가면 된다.
본격적인 등산
카메라를 챙겨가긴 했으나 이야기하면서 올라가서 별로 사용을 안 한 관계로 첫 사진이 천축사 일주문 사진. 사실 천축사까지 왔으면 거리상으로 이미 절반 이상은 온 거다. 여기서부터 올라가는 길이 경사가 좀 더 가팔라져서 쉽지 않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여기까지도 예전에 아빠랑 템플스테이 할 때 올라와본 곳이라 힘들었다기보다 반가운 마음이 좀 더 앞섰다. 그때는 고양이는 못 본 것 같은데, 이번에 보니 고양이가 제법 많다.
마당바위부터 본격적인 돌길이 펼쳐지는데, 여기는 생각보다 눈이 안 쌓여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 고양이들은 높은 곳에서 좋은 공기에 좋은 경치 만끽하며 사니 행복할 거라고 하던 친구. 그래도 역시 배고픔은 어쩔 수 없는지 사람이 지나가면 뭐 떨어질 거라도 없나 싶어서 슬며시 다가오곤 하더라. 냥이가 "야옹-" 울기라도 하면 "Why?" 하며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는 게 좀 훈훈하고 재밌었다ㅋㅋㅋ
마당바위 지나 조금 올라오니 여기에도 고양이가 있다. 얼룩고양이, 치즈고양이, 아깽이 등등 4-5마리는 되어 보인다. 여기서도 인간이 주는 음식 조금씩 받아먹고 있던 녀석들.
근데 이 고양이들 다 중성화 수술이 된 녀석들 같은데 대체 어떤 경위로 이 산에서 살게 된 거지? 이미 산에 사는 길냥이를 누가 중성화를 해서 다시 산으로 돌려놓은 건가? 아니면 설마 집냥이였는데 산에다가... 는 아니겠지...?
아무리 겨울이어도 산을 오르다보면 덥고 땀이 나서 겉옷 하나쯤은 벗게 된다. 부피 큰 패딩을 입고 갔는데 그걸 담기에는 내 가방이 너무 작아서 결국 친구에게 신세 졌다. 이날 오르고 내리는 내내 길잡이가 되어주고, 짐도 대신 들어주고, 부족한 장비도 빌려준 친구. 진심으로 이 친구 없었으면 완주 못 했다.
참, 등산화와 장갑은 준비했지만, 등산복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던 관계로 이날 상의는 운동복 상의>면 가디건>후드집업>패딩 순으로 껴입음. 겨울 산행에선 땀이 식을 때 저체온증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안쪽에 입는 옷은 땀은 날려 보내면서 외부 냉기는 차단해 주는 복장이어야 한다고 해서 그나마 신경 쓴 것. 땀이 날 때 벗을 수 있도록 얇은 거 여러 겹을 입는 게 좋다고 해서 쉽게 벗을 수 있는 옷들로 입었다. 모자도 있으면 좋대서 후드집업도 챙김.
하의는 레깅스>조거팬츠를 입었다. 대충 기모 조거팬츠 하나만 입으려다가 이날 좀 추운 것 같아 껴입었는데, 결론적으로 정상에서 엄청 추웠기에 잘한 선택이었다.
신선대 정상 도달
약 2시간 여의 등산 끝에 도봉산 정상 도착! 신선대 정상.. 춥다. 진짜 춥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손발은 둔해지고 온몸이 덜덜 떨린다. 가장 대비가 부족했던 얼굴은 추워서 결국 금세 감각을 잃어버린다. 정상에 도착하기 한 50m 전부터 공기와 바람이 달라진다. 겨울 도봉산 등산할 때는 꼭 방한 마스크 등을 준비하기를 추천한다.
이날 친구 덕분에 이래저래 내 사진이 많이 남았다. 카메라를 가져온 나는 카메라로, 블랙야크 100대 명산 리스트를 채우겠다는 목표를 가진 친구는 핸드폰으로 각자의 기록을 남긴다. 친구가 가져온 삼각대로 같이 기념사진도 남김.
산 뷰와 도시 뷰가 적절히 어우러진 풍경. 반대쪽을 바라보니 설산이 우뚝 솟아 있다. 이거 참 올라온 보람이 있는 풍경일세. 산과 도시가 적절히 어우러진 경치를 보면서, 새삼스레 서울은 고층빌딩도 많고 산도 많은 참 독특하면서 하이킹하기 좋은 도시라는 이야기를 나눈다.
도봉산은 봉우리가 3-4개쯤 되는데, 이제 옆 봉우리 가보겠냐는 친구의 말에 순간적으로 내가 물음표 가득한 표정이 되자 친구가 바로 조크였다고 한다. 우리가 안 세월은 꽤 오래임에도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은 많지 않아 아직 나를 잘 모르겠지만, 나 '하면 하지' 사람이거든...? 농담으로 던진 말에도 하자고 덥석 물 수 있는 사람이니 그렇게 가볍게 물어보면 안 된다구ㅋㅋㅋㅋ
하산하면서 본 풍경 중 가장 멋있고 좋았으나, 이미 정상에서 겨울 산바람에 체력을 다 빼앗기는 바람에 카메라 들 힘조차 없었다. 이 사진은 친구가 찍어서 보내준 건데, 너무 멋져서 올려봄.
다시 약 2시간 가까이 걸려 하산도 무사히 완료. 아무래도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좀 더 힘들긴 했는데, 생각보다 할 만했다. 처음 장만한 등산화의 힘을 좀 느낀 것 같기도 하고. 친구도 도봉산을 꽤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초보라고 했던 내가 그럼에도 잘 따라와 줘서 다행이라고 한다. 아, 내려갈 때 한 번 미끄러져서 엉덩방아 찧었던 건 안 비밀😂
전체적으로 중간중간 물 마시고 에너지바도 먹고 하면서 쉬엄쉬엄 걸어 왕복 총 4시간 정도 걸렸다. 그동안 얘기를 꽤 많이 나눴고 친구에 대해서 처음 아는 사실들도 많아서 그런 점에서도 좋은 시간이었다. 친구가 페이스 조절을 잘 해준 덕분에 대화할 여유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마주친 다른 등산객들과 서로 인사하고 양보하면서 다닌 것도 참 좋은 경험이었다. 설날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라 새해 인사를 주고받은 게 참 훈훈했다. 신선대를 코앞에 두고 저기 되게 funny 하다고 해주신 어느 아저씨 말씀에 웃기도 했다. 다들 친절하게 알려주시려고 해서 감사합니다.
하산 후 만찬
내려오니 딱 해가 지고 저녁 먹을 시간이 돼서 식사를 하러 갔다. 둘 다 꽤 배가 고파서 고기 먹어야겠다며 삼겹살 먹으러 감. 시장이 반찬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엄청 푸짐하고 맛있었다. 이제 도봉산 간다는 친구들한테 맛집 소개해줄 수 있다. 든든한 식사로 완벽한 마무리.
다음날 아침까지는 다리가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뭔가를 하느라 하루종일 앉은 자세로 있고 전혀 풀어주지 못했더니 근육통 정도가 아니라 근육이 찢어지는 뭐 그런 느낌이... 들어서 한 일주일 고생하긴 했다. 등산 자체보다도 등산 후 스트레칭 등으로 다리를 잘 풀어주는 게 중요한 듯하다.
아무튼, 케이블카 탄 거 제외, 최근에 내가 두 발로 직접 올라본 산 중엔 가장 높은 곳의 정상을 찍고 온 것 같은데,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서 앞으로도 종종 등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경험 선사해 준 P군에게도 감사!
등린이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도봉산 신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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