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by Heigraphy
문화인 200%

[전시후기] 이불 <시작> (LEE BUL Beginning)

by Heigraphy 2021. 4. 26.
반응형

 

출처: 서울시립미술관(SeMA)

이불 <시작>

LEE BUL Beginning

李昢始作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기간: 2021.3.2 - 5.16

 

시청역에서 가깝다.

 

 

화창하고 깨끗한 날

날씨가 매우 좋은 어느 주말 오전,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나무가 푸릇푸릇한 게 벌써 여름이 다 온 것 같았다.

 

 

서울시립미술관 이불 작가 전시

오랜만에 찾은 전시.

친구의 제안으로 찾은 전시인데, 이불 작가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지만 미술관 자체를 오랜만에 와서 기대가 되었다.

우리가 가려는 날 사전예약이 마감되어서 사람이 많을까봐 조금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거의 없었다.

일요일 오전 10시 반쯤 방문.

개인적으로 이불 작가에 대해 잘 모르지만 검색을 해보니 기괴한 형태의 작품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지만... 생각보다 더 쉽지 않았던 전시.

 

 

펌프로 완성되는 작품

들어가자마자 로비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관객참여형 작품이었다.

작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펌프를 밟아 공기를 주입시켜 완성되는 작품이었다.

이걸 보자마자 나는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존원(JonOne)의 작품이 떠올랐고... 

(그래피티 작품을, 만들었던 당시 그대로 재현해놓아서 작품 앞에 페인트를 두었더니 어느 커플이 관객참여형 작품인 줄 알고 그 위에 페인트를 덧칠했다가 의도치 않게 작품에 흠집을 남긴 사건)

펌프를 밟아서 공기를 넣어달라는 문구를 보고도, 이거 참여형 작품 맞는 건가 잠깐 걱정을 했다..^^;

 

 

<히드라(모뉴먼트)>, 1996/2021, 천 위에 사진 인화, 공기 펌프, 1000cm(높이)×약700cm(지름)

1996년작 <I Need You(모뉴먼트)>에 이어 만들어진 작품.

앞면에는 거대한 괴물 형상이, 뒷면에는 아시아 오리엔탈리즘을 자처한 여성의 이미지가 인쇄되어 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비웃으며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남성의 단순한 시각과 동시의 여성들의 콤플렉스를 이중으로 질문한다는 작품.

8-90년대에 이미 여성을 향한 왜곡된 시선, 관념, 이미지 등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비판하고자 시도했던 작가.

전시는 로비를 시작으로, <전시실1: 소프트 조각>, <전시실2: 퍼포먼스>, <전시실3: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기가 빨리고 힘든 전시였다.

이 전시는 이불 작가의 초기(1980-90년대) 작품을 전시한 건데도 2021년에 봐도 충격적인 작품들이 많았기에.

 

 

<무제(갈망 레드)>, <무제(갈망 블랙)>, <몬스터: 핑크>

80년대에 미술을 공부한 작가는 기존 관행과는 다르게 천, 실, 솜 등의 부드러운 재료로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불 작가의 상징 '소프트 조각'이 되었다.

기형의 몸 파편을 이어붙여 공포심과 유머러스함을 유발하는 이 작품은, 언뜻 인체인 듯 보이면서도 불완전하고 기괴한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소프트 조각을 입고 공항, 도쿄의 황궁, 상업지역, 학교 등 일상 공간에 나타나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기존의 조각 언어, 몸, 젠더 등에 대한 관념이나 전통, 위계, 권력 따위를 끊임없이 직시하고 비틀고 파괴하려 했다는 점이 조금은 느껴졌다.

 

 

<무제(갈망 레드)>를 위한 드로잉 外

조각을 위한 드로잉.

단순한 도면이라기보다는, 평면의 종이 위에 여러 질감을 가진 다른 재료들로 표현한 또 다른 작품으로 보는 것이 적절한 듯하다.

 

 

전시실2와 전시실3은 촬영 불가라 사진이 없다.

전시실3은 작가의 작품이 퍼포먼스와 소프트 조각으로 나아가기까지의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 퍼포먼스를 영상과 사진으로 남긴 전시실2는 개인적으로 보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주목해온 문제의식 - 남성중심 사회가 만들어 온 여성에 대한 관념, 오리엔탈리즘의 재현적인 여성 이미지, 신화와 우화에서 그려온 여성의 전형에 대한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장소로서 퍼포먼스를 행위하였음" (리플렛 p.19, 전시실2: 퍼포먼스 설명 中)

 

결국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인지는 조금 알겠는데..

퍼포먼스 자체가 너무나 강렬하다.

주로 오브제를, 텍스트를, 신체를 아주 적나라하게 배치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소프트 조각을 입고 '살아 있는 조각'을 구현하는 작품도 많았다.

뒤가 궁금해 영상을 계속 보고 싶지만 왠지 모를 불쾌감이 감돌고 속이 불편해져서 이어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 영상이 12개쯤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힘든 전시인지 짐작이 갈런지.

2021년에 단편적으로 봐도 충격적인데 실제로 퍼포먼스가 행해졌던 80-90년대에는 얼마나 충격적이었을 것이며, 당대에는 이 작품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였을지가 궁금해졌다.

 

 

관람 끝

로비에 나와 맑은 하늘을 보니 조금 진정이 됐다.

아침부터 식사도 못 하고 가서 배가 고팠는데, 전시 다 보고 나니 입맛이 달아날 정도였다(...)

이런 전시는 또 처음이네.

 

 

photo by 9

그래도 열심히 보려고 노력했다.

취향이라기엔 무리가 있어서 두 번 보기는 좀 힘들 것 같은 전시지만 덕분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작가의 후기 작품은 이렇게까지 충격적이거나 기괴하진 않다는데 기회가 되면 후기 작품도 한 번쯤 보고 싶다.

 

 

Copyright ⓒ 2021 Heigraphy All Rights Reserved.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