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으로 부산에서의 마지막 날.
혼자 보낼 뻔했는데 H언니가 오전에 잠깐 시간이 된다고 하여 잠깐 얼굴 보기로 했다.
이제 오롯이 혼자서 여행하는 거 좀 심심해하는 나로서는 타지에 와서 3일 내내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한 일.
심지어 다른 일정이 있었는데 나를 위해 시간을 빼서 와주는 언니에겐 더더욱 감사하다.
서울에 언제 갈지 아직 결정은 못 했지만, 이 숙소는 오늘 떠날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마지막 오션뷰다.
나의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언니가 또 해운대로 와준다고 하여 후다닥 준비해본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다행히 흐리지도 않고 구름만 조금 있는 정도였다.
오늘은 언니랑 미포-청사포-달맞이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미포에서 청사포로 걸어가는 길에 있던 몽돌해변.
원래는 개방이 안 되어있던 곳이라 언니도 몰랐는데 처음 내려와 본다고 한다.
크고 육중한 몽돌들이 파도에 부딪히면서 떼구르르 돌 구르는 소리가 난다.
모래 해변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던 곳.
걸어서 왔기에 볼 수 있었던 풍경.
오늘의 반환지가 어느새 한눈에 들어온다.
해변을 따라 걸어갈 수는 없어서 다시 달맞이길로 올라와 걸었다.
이곳에서 열차가 지나갈 때 감성 어린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하여 대기했다가 한 장 찍었다.
꽤 유명한 스팟인지 우리 말고도 두어 명 정도가 이 타이밍을 맞춰 사진찍기 위해 대기하고 있더라.
마치 일본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낼 수 있다고 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
언니는 그런 내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주었지.
카메라 무빙이 정말 환상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언니가 찍어준 영상이 더 영화의 한 장면 같고 그렇다.
블로그에는 캡쳐사진 한 장만 올림ㅎㅎ
좋은 포토스팟 알려주고 내 모습도 남겨준 언니에게 감사!
언니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금방 중간 목적지에 도착했다.
올초에는 캡슐타고 왔던 곳, 걸어서 오는 것도 할 만하다.
조금은 위태로운 자리에서(?) 낚시하시던 아저씨.
베테랑의 기운이 느껴진다.
서울에선 못 보는 낚시하는 모습들이 내겐 정겹고 반갑고 신기하고 그렇다.
여기까지 왔으니 등대 가까이 가서 보기로 한다.
흰색 등대 보러 가는 길에, 그물 같은 거에 잔뜩 얽힌 해조류를 뜯고 계신 분이 있길래, 이게 뭔지 여쭤봤더니 파래라고 하신다.
양식은 아닌 것 같은데, 자연산 파래라고 해야 하나? 파래를 원래 이렇게 수확하나?
(해조류를 '수확하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나? 아시는 분 댓글 좀...)
이곳에서도 하는 일이라곤 열심히 바다를 바라보는 것.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서 오래 있지는 못했다.
바닷바람에 머리가 너무 흩날려서 약간 당황하니, 언니는 이게 진짜 부산의 날씨라고 한다.
이날의 첫끼.
물총 조개라는 것이 들어간 물총 칼국수를 먹었다.
칼국수 자체는 깔끔한 맛에, 잘 익은 김치와 깍두기 곁들여 먹으니 참 맛있었다.
노포 물총 칼국수 후기 자세히 보기 :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다시 길을 나선다.
우리가 걸어갔던 길이 아래 한눈에 보인다.
언니도 이 코스로는 처음 걸어본다고 하여 조금 느긋하게 같이 길을 찾는다.
오후에 원래 가족분들과 일정이 있다고 했는데, 일정까지 취소하고 나와 여유롭게 시간을 더 보내는 것을 선택해준 언니.
덕분에 마음도 경험도 더 풍요로워졌던 나의 부산 산책.
언덕도 오르고 꽤 많이 걸었으니 목도 좀 축이고 다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진다.
시간이 꽤 흘러도 부산에서 언니와 나눈 대화들은 참 기억에 남는 게 많다.
업(業)과 파트타임키드 정신에 대한 이야기, 연애의 끝에 대한 이야기 등등.
언니의 얘기도 많이 듣고, 나도 이때까지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들을 처음 해본 날.
혼자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들을 그 무게가 어떻든 쏟아내게 되었던, 나로서는 흔치 않은 날이다.
언니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거나 혹은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고, 그를 들으며 나는 끄덕끄덕 한다.
내가 목말라하는 부분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삶의 지혜를 나누어주는 사람은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우리의 사정과 대화가 어떻든 하늘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맑고 푸르다.
대화가 잠시 멈출 때면 두 사람 다 조용히 하늘을 바라본다.
잠깐의 침묵마저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
해가 한창 빛나는 해운대 바다를 담는 나와, 그런 내 모습을 담아준 언니.
어느덧 시작점으로 거의 다 돌아온 우리의 산책.
한때는 횟집들이 주름잡던 해변의 한 골목 쪽으로 슬슬 걸어가 본다.
이곳에 정박된 배가 물고기를 잡아다가 바로 횟집에 가져다주면 그걸로 회를 떴다며.
지금 보기엔 약간 허름한 횟집들이 줄지어 서있다.
상권이 이동하면서 지금은 예전만큼의 활기를 찾지 못하는 게 아쉬운 점이었다.
날씨도 좋고 타이밍도 좋아서 해운대에서 우리 사진도 남겼다.
부산에선 늘 부산의 모습만 담기 바빴던 것 같은데, 언니 덕분에 내 모습도 많이 남겼던 날이었다.
이대로 헤어지기는 또 아쉬워서 해변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서 바다를 바라본다.
물멍 때렸다고 해야 하나.
바다 보면서 서브웨이 먹으니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네.
이 순간만큼은 참 여유로운 것 같고 좋다.
아무리 부산이래도 11월이라 수영을 하기엔 조금 쌀쌀한 날씨였는데, 한쪽에선 마음만은 청춘인 분들이 비치발리볼을 하기도 했던, 에너지와 좋은 기운 넘치던 해운대 바다.
언니 덕분에 또 아침부터 저녁까지 참 알찬 시간 보낸 날.
해운대의 노을을 마지막으로, 다음엔 서울에서 또 보자는 약속을 하며 언니와 헤어졌다.
내 사람과의 시간을 통해, 찾고자 했던 질문을 알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많이 걷고, 보고, 찍고, 먹고, 듣고, 말하는 동안 많이 가벼워졌다.
결국 스스로 찾아야 하는 질문에, 많은 힌트를 얻은 느낌이랄까.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당분간은 이때의 시간들 덕분에 살아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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