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언니와 헤어지고 부산역으로 이동했다.
밤에 서울로 올라가려다가, 하루 더 묵고 아침 일찍 가기로 결정하여 부산역 인근으로 숙소를 옮겼다.
그동안 코시국이라고 여행 자체를 별로 못 하기도 했거니와, 가도 주로 1인실을 썼기 때문에 도미토리는 정말 오랜만에 묵어본다.
괜히 유럽여행 할 때 생각나고 그러네.
시간이 좀 늦었지만 저녁도 먹고 주변 산책도 할 겸 밖을 나와본다.
호스텔 사장님에게 근처에 혼자 밥 먹을 만한 곳이 있냐고 여쭤봤더니, 너무 유명해서 흥미가 조금 떨어지는 국밥집과 부산역 안에 롯데리아 같은 곳을 알려주셔서 조금 짜게 식었다.
'이바구'는 '이야기'의 부산 사투리라고 한다.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테마 거리.
여기도 아마 부산역 가서 하루 묵고 간다고 했더니 H언니가 알려준 곳이었던 것 같다.
'느리지만 삶이 즐거워지는 곳'이라니 궁금하네.
순전히 마을분들에 의해 운영되는 모노레일이라고 한다.
내가 갔을 때도 이곳 주민이신 듯한 할아버지께서 안내를 해주셨다.
누구나 이용 가능하며 무료이다.
낮에는 계단에서 누가 빨리 올라가나 마을 사람들 대 여행객이 시합 같은 것도 한다고 하는데, 참 재미있는 동네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로컬이 살아있다는 점이 참 부럽고 매력적인 곳.
모노레일 타고 올라오면 이런 야경을 볼 수 있다.
사실 저녁이라 문 닫은 곳도 많았는데, 야경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보니 참 다양한 지형에 다양한 형태로 자리를 잡은 듯한 부산의 주택들이다.
일제강점기 부산항 개항을 시작으로 해방 후 1950-60년대엔 피난민의 생활터였으며, 1970-90년대엔 산업 부흥을 이끌었던 시대적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마을.
두루누비 어플을 이때 처음 깔아서 사용해봤다.
이바구길도 등록이 되어 있길래 열심히 따라갔는데 언덕이 정말 많았다.
나 같은 여행자는 한 번 올라가고 말 거라 그나마 괜찮은데, 이곳에 사는 분들은 동네 오가는 것도 쉽지 않겠다 싶다.
왕복 코스가 아니어서 중간지에 있는 전망대 정도까지만 갔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다.
저녁이라 정말 한적했던 길.
이바구길의 진면목을 보려면 낮에 오는 게 더 좋을 것 같긴 하다.
사실 숙소 라운지에서도 부산항대교가 정말 떡하니 보였는데, 이쯤 되면 동구 초량동에선 어디서든 부산항대교가 보이는 건가 싶다.
삼각대도 뭣도 없었지만 간만에 장노출로 사진 열심히 찍어봤다.
모노레일 운영 시간이 지나서 내려갈 땐 168계단을 걸어서 내려갔다.
하절기 7시~21시, 동절기 7시~20시까지 운영하니 참고하기.
보다시피 계단 경사가 완만하진 않아서 바짝 긴장하고 다리에 힘주고 걷다가 막판엔 좀 후들거렸다.
운동부족 체력 거지 반성...
부산에서 마지막 한 끼를 먹는다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역시 국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동안 맛있는 거 잘 먹고 다녔지만, 뭔가 2%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국밥 한 그릇 먹고 든든해짐.
역시 한국인은 뜨끈한 국물 곁들인 밥심인가 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왔던 부산에선, 새빨간 조명이 왠지 조금 무서워서 다가가 볼 엄두도 못 냈던 차이나타운.
그새 깡다구 좀 생겼다고 만두 맛집 찾아 혼자 참 씩씩하게 걸어가 보았네.
근데 시간이 늦어서 만두 맛집은 문을 닫았다.
만두 먼저 사고 국밥 먹을 걸 아쉬워.
(먹을 거에 진심인 사람)
호스텔 라운지에서 보이는 부산역.
새벽이 다 된 시간이었는데도 기차가 다니더라.
라운지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다 보니 덜컹덜컹 기차 들어오는 소리가 좀 반갑고 그랬다.
정말 피곤했지만 부산 여행 마무리와 동시에 꼭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1시 반이 다 되도록 라운지에 앉아서 글을 썼다.
질문을 질문하는 여행을 마친 소감 같은 거랄까.
여행의 목적을 난 다 이뤘다.
가깝다고 미적대다가 너무 촉박하게 나와서 이 짧은 거리를 또 뛰었네.
너무 급하게 나와서 호스텔에 이어폰을 두고 나온 듯한데, 사장님에게 연락해보니 그런 거 없다고 해서 슬퍼짐.
새벽까지도 있던 이어폰이 숙소 아니면 잃어버릴 곳이 도저히 없는데...
결국 5시간이나 되는 귀경길을 음악도 없이 갔다.
서울역에 내려서 남산타워 보자마자 또 물밀듯이 밀려오는 알 수 없는 감정.
반가우면서 지겹고 좋으면서 벌써 피곤하고, 도대체 서울을 대하는 나의 감정은 뭔지 모르겠다.
4일 만에 본 거니까 반가운 마음이 조금은 더 앞서는 거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기왕이면 좋은 마음으로 오래오래 보자꾸나 나의 도시야.
이후의 행선지와 이야기는 앙둥이와의 호캉스 기록을 보면 된다.
그러고 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참- 바쁘게도 살았던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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