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by Heigraphy
시각적 기록/사진일기

쿠팡 단기 알바 후기 (이천2센터 오후조 허브 HUB)

by Heigraphy 2023. 8. 26.
반응형

 

  8월 한여름, 나는 돈이 필요했고 시간은 많지 않았다. 휴면계정이 된 지 오래인 알바몬을 오랜만에 들어가서 단기 알바 자리를 찾아보는데, 지역을 어디로 설정해도 자꾸 쿠팡으로 도배가 되었다. '쿠팡'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사실 그렇게 도배되는 구인글은 쳐다도 안 봤을 거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보니 이미 쿠팡 물류센터에서 알바를 해본 사람이 굉장히 많은지 블로그에 후기도 엄청나게 많았다. '쉽지 않아 보이긴 하는데, 또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고. 이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그런 마음으로 신청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총 3번을 다녀왔고, 인센티브가 더해져서 수입은 나쁘지 않았고, 사람이 많았는데 택배 물량은 훨씬 더 많았고, 엄청나게 덥고 힘들었지만 일은 단순해서 어렵지 않았고, 꽤 체계적이었고, 좀 다쳤다.

 

 

0. 근무 시간과 급여 (일용직 일급)

  이천2센터 허브 기준으로 근무 시간은 아래와 같이 구분한다.

  • 오전조: 08:00-17:00
  • 오후조: 19:00-04:00

  탑승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출근하려면 한 2시간 전에 셔틀 타야하는 경우가 아마 대부분일 거다. 그말인즉 오전조 근무를 하려면 오전 6시에는 셔틀을 타야한다는 것. 나는 야행성이라 오후조를 선택했다.

 

 

  급여는 아래와 같다. (2023년 8월 기준)

쿠팡 이천2센터 급여 안내표
출처: 쿠팡 이천2센터

  표는 세전 일급이고, 여기에 고용보험 0.9% 공제, 일~토 중 이틀 이상 근무하면 주휴수당, 연장 근무 시 연장수당, 공휴일 인센티브 등이 상황에 따라 더해져서 지급된다. 급여는 익일 22시 이전 지급. 만약 지급일이 주말이거나 공휴일이면 휴일 이후에 지급한다.

 

  더 자세한 사항은 근무 확정 되면 첫 출근 카톡에 안내되어 있다.

 

 

 

1. 근무 신청 및 준비

  처음엔 문자로 근무 신청을 했는데, 문자로는 전날만 근무 신청을 할 수 있고 쿠펀치 어플을 깔면 며칠 후 근무도 미리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신청을 한다고 다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확정 카톡을 또 받아야 한다. 한 4일 전에 신청해놓고 기다렸더니 전날 확정이 됐다.

 

쿠팡 단기 알바 쿠펀치 셔틀 앱
앱으로 신청

  쿠펀치와 함께 셔틀 어플도 필요하다. 출근할 물류센터와 탑승할 위치, 시간대(오전조/오후조) 등을 입력하고 탑승신청을 한 후, 당일에 해당 위치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 이천2센터는 자차 출근 불가.

 

  출근 확정 문자에는 준비물과 금지사항을 함께 안내하는데 다음과 같다. (이천2센터 기준)

  • 신분증 실물 O
  • 자물쇠 O
  • 운동화 O (뮬 X)
  • 시계 X
  • 캡모자 X
  • 반바지 X (단, 7-9월 혹서기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조건부 허용)

  그 외 실제 현장 가면 장갑, 물(투명한 병) 등 더 필요하긴 한데 쿠팡에서 제공한다.

 

 

2. 셔틀버스 타고 출근

쿠팡 단기 알바 정거장에서 타는 빨간색 셔틀버스
빨간색 셔틀버스

  조금 긴장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일찌감치 탑승장으로 나가있었더니, 버스 도착 시간이 임박해지면서 갑자기 사람들이 줄을 섰다. 10분 전까지 긴가민가 하다가 여기 탑승장 맞구나 확신했다. '그동안 이렇게 많은 이웃들이 다 쿠팡 알바를 하러 갔다고?' 버스는 한 대도 모자라서 두 대나 와서 사람들을 픽업했다.

 

 

지도에서 본 쿠팡 이천2센터
지도에서 본 이천2센터

  주변에 다른 물류센터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쿠팡 이천2센터.

 

 

3. 근무 시작 전 준비

  셔틀 내려서 사람들 많이 가는 곳 따라가다 보면 체크인 하는 곳이 나온다. 신규는 신규 데스크로, 와본 사람은 오전/오후조 데스크로 찾아가서 쿠펀치 체크인을 하고 신분증을 제출한 후 카드키를 받으면 된다. (신규는 원바코드도 받음)

 

카드키 겸 사물함 번호모든 음료 400원 자판기
카드키와 자판기

  왼쪽은 체크인 후 받는 카드키. 숫자는 본인의 사물함 번호이다. 사물함 쓸 때 자물쇠가 필요하다. 특히 일하러 갈 때 핸드폰을 사물함에 넣어놔야 하니 자물쇠 필수.

 

  오른쪽은 나름 복지(?) 자판기. 물과 커피, 게토레이, 비타파워, 식혜, 탄산음료 등등 모든 종류의 음료가 400원이다. 일터는 덥고 자판기 음료는 저렴하다보니 금방 동이 나기도 했다. 다른 자판기에는 얼음컵도 있었다.

 

 

4. 첫 출근 안전교육

안전교육장 빈 책상과 레쓰비 하나빨간색 냉동 스카프
안전교육장

  첫날에는 안전교육을 2시간 정도 받았다. 매일매일 신규 입사자가 있는 듯, 시작하는 시간쯤 되니 공간이 꽉 찼다. 영상 틀어놓고 "보세요" 하는 정도라 그냥 에어컨 나오는 자리에 2시간 앉아 있다가 온다고 봐도 된다. 첫 출근일이 제일 꿀이다.

 

  오른쪽은 웰컴 기프트로 받은 냉동 스카프. 찬물에 2-3분 정도 적셔두면 스카프 안에 있는 뭔가 부풀어 오르면서 냉기를 유지하는 형태라고 했다. 효과는 뭐 글쎄.

 

 

5. 기다리고 기다리던 식사 시간

  허브 오후조는 22:15-23:15 식사 시간이다. 작업장은 2층이고 식당은 4층이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이 타니 애초에 계단으로 가는 게 낫다. 누구 소개로 가지 않는 이상 신규한테 이런 거 하나하나 다 알려주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저녁식사, 흰 쌀밥, 소고기무국, 오징어채, 김치, 고기만두, 김치만두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3시간쯤 물류 일 하다보면 한밤 중인데도 배가 엄청 고프다. 밥은 솔직히 좀 부실했다. 단백질 부족, 탄수화물에 장수세미(채소)로 일단 배만 채우게 되는 식단. 영양이 안 채워져서 양으로 채웠다. 그 많은 밥을 싹싹 비우게 된다.

 

  식단이 마음에 안 들면 라면이나 빵+우유+계란 같은 간편식도 있다.

 

 

돼지바 아이스크림
돼지바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제공. 식당에서 찾을 수 있다.

 

 

 

6. 근무

  작업장에는 휴대폰 반입 금지라 사진 없음. 일단 기계 때문에 엄청 덥다. 8월이라도 밤에는 조금 선선해지는 날씨였고, 물류 계속 상하차 해야 해서 문을 열어두는데 안쪽은 전혀 딴세계 얘기.

 

  허브는 다 포장된 택배를 보내기 위해 분류하는 작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준비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비품실에서 작업화 갈아신기
  2. 중앙데스크에 모여서 원바코드 체크인
  3. 체조 및 공지 전달
  4. 자리 배정받음
  5. 장갑과 얼음물 챙기기
  6. 본인 파트 일하러 감

  밥 먹고 오면 다시 중앙데스크 모여서 공지사항 듣고, 얼음물 챙겨서 자기 자리 가서 일하면 된다.

 

  작업화 낡고 냄새 엄청 난다. 양말 두 개 챙겨온 사원님들도 많이 봤다. 나는 아예 신고 버린 적도 있다.

 

  3일 출근했는데 3일을 다 다른 업무에 배정받았다. 한 개는 정확히 명칭이 뭔지 모르겠다. 하여튼 업무 난이도는 다 비슷하게 쉬우나, 몸이 힘든 정도로 따지면 개인적으로 물류팀(?)>>>PB슈트>>>>>>>스테이션.

 

  물류팀은 수동 분류, PB슈트는 반자동 분류, 스테이션은 거의 자동에 가까운(?) 분류라고 보면 될 듯?

 

  물류&PB슈트는 다른 사원님들이랑 같이 일하고, 스테이션은 혼자 일한다. 물류&PB슈트는 물건 실은 토트 날라야 해서 힘도 꽤 쓰고, 나중엔 나도 모르는 멍이 막 들어있기도 했다. 스테이션은 토트 나를 일은 상대적으로 적어서 힘을 덜 쓰는 대신 계단을 좀 오르내려야 한다. 작업장이 기본적으로 굉장히 더운데 스테이션은 그나마 개별 선풍기를 줘서 조금 덜 더웠다.

 

  밥 먹기 전에는 쉬는 시간 없고, 밥 먹고 온 후 한 2-4시 사이에 10-15분 정도 쉬는 시간을 준다. 물론 쉬는 시간 아니어도 옆 사원님한테 말하고 잠깐 화장실 다녀오거나 물 받으러 가는 것 정도는 된다. 근데 물량이 계속 쏟아져서 물 한 번 받으러 갈 틈을 찾기가 좀 어려움. 쉬는 시간에는 무조건 에어컨 있는 곳 찾아 가야 하는데 가는 데 1분, 오는 데 1분 쓰고 한 8분 쉬다 오는 것 같음.

 

 

7. 셔틀버스 타고 퇴근

  일 끝나면 사물함에서 짐 챙겨서, 아까 체크인 했던 곳에서 쿠펀치 체크아웃 하고 카드키 돌려주고 신분증 돌려받아서 셔틀버스 타면 된다.

 

밖에서 본 쿠팡 물류센터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바라본 새벽 바깥
집에 가는 풍경

  오후조 새벽 4시에 일 끝나고 4시 반쯤 셔틀버스 출발.

 

 

여명과 고양이

  새벽 퇴근길에 이런 하늘을 봤다. 마실 나온 고양이는 덤.

 

  글 서두에 쿠팡 알바 하다가 좀 다쳤다고 했는데, 쉬엄쉬엄 할 걸 괜히 의욕이 앞서서 일하다가 잘못 부딪혀서 뼈를 다쳤다. 그런 통증은 난생 처음이라 집에 와서 샤워만 하고 잠도 못 자고 다시 바로 병원행. 그날 일급 절반은 병원비로 날렸다. 돈보다도, 이 중요한 시기에 내 건강 어쩔. 이 글 읽는 분들은 나 같은 미련한 짓 하지 말고 꼭 본인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시길.

 


 

  쿠팡 알바 하고 느낀 바가 꽤 많다. 일단 정말 놀랐던 건, 이천2센터 식당이 참 큰데 그 식당을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며 완전히 메울 만큼 많은 인원이 밤새도록 일을 한다는 것. 그런데도 쉴 틈도 없이 택배 물량이 계속 쏟아진다는 것. 누군가가 편하게 받는 로켓배송, 새벽배송 뒤에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정말 많은. 머리론 알았지만 실제 보고 겪게 되니 좀 충격이긴 했다.

 

  쉬는 시간에 갔던 휴게 공간에서는 웃음소리가 꽤 이어졌다. 몇몇 분은 익숙한 얼굴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나 같이 힘들어서 현타온 표정인 사람이 대다수일 줄 알았는데, 나름 즐겁게 일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관리자분들도 정말 열심히 하시고 진심으로 걱정하신다. 뭔가 시스템에서 생긴 공백을 사람들이 채우는 느낌이다.

 

  사실 나는 쿠팡 아이디도 없다. 알바 하기 전에도 개인적으로 로켓배송은 별로였다. 앞으로도 '과하게 빠른 배송'을 앞세우는 플랫폼은 안 쓸 것 같다.

 

  뭐 인센티브는 나쁘지 않았으니 나중에 또 조건이 맞으면 알바는 할 수 있겠지.

 

 

Copyright © 2015 Heigraphy All Rights Reserved.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