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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y Heigraphy
해외여행/23-25'생활자의 여행기(Thailand)

[태국] 우당탕탕 후아힌 여행기

by Heigraphy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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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

  "후아힌 갈래? 친구 커플이 가는데 방이 남아서 같이 가려면 가도 된대."

  후아힌을? 그 친구 커플이라는 분들 나는 잘 모르는데? 그래서 안 가려고 했다. 고민 좀 해보겠다고 해놓고 진짜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답을 더 미룰 수 없을 때 안 간다고 했는데... 모처럼 찾아온 연휴를 혼자 집에서만 보내기가 너무 심심한 거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제안만 아니면 그냥 카오산로드나 한 번 갔다가 적당히 재미있고 편안한 연휴를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카오산로드가 어떻게 갑자기 후아힌이 되냐고. '짜식 좀 밉네..' 하는 생각이 들려다가, 아 이럴 거면 그냥 나도 갈래, 해서 성사된 여행. 솔직히 가기로 결정한 것부터 내 기준에선 아주 우당탕탕이다.

 

 

1일 차

방콕에서 후아힌 가기

  방콕에서 후아힌을 가는 버스는 여러 터미널에서 탈 수 있는데, 에까마이, 모칫, 싸이따이마이가 있다. 사실 아침 일찍부터 싸이따이마이를 갔는데 당일 표가 전석 매진이라고 해서 발길을 돌렸다. 내가 떠난 날은 다름이 아니라 송크란 연휴의 첫날이기 때문이지... 내 나라 명절에도 어디 안 가는데 남의 나라 명절에 어디 가보겠다고 나선 게 실수였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이 모칫 터미널. 후아힌으로 가는 차량은 미니밴(롯뚜)이라서 모칫 터미널2가 아니라 위 지도에서 Small Bus Station이라고 나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4월의 태국이 엄청 더운데 모칫 터미널2에서 롯뚜 정거장으로 가는 데만도 땀이 벌써 뻘뻘 남... 며칠 집에만 있었다고 이 더위를 잊고 살았구나 내가.

 

 

D2 창구, 승강장 48

  후아힌으로 가는 티켓은 D2에서 살 수 있고, 온라인 매진이 아니라 현장판매를 꽤 하는지 줄이 엄청 길었다. 9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가장 빠른 차는 12시에 있다고 해서 그거라도 달라고 했다. 다들 명절이라고 고향 가는데 거기 끼어있는 연고 없는 외국인 한 명 여기요... 그나저나 기다리는 동안 다들 나한테 자연스럽게 태국어로 말 걸고 뭐 물어보는데, 나 현지인처럼 보이나 싶고..?

 

 

드디어 출발

  12시 출발이래서 11시 반부터 플랫폼 앞에서 기다렸는데 버스가 12시 반이 다 되어서야 왔다. 그마저도 중간에 갑자기 승강장이 바뀌었는데 방송으로 나온 태국어 못 알아듣고 눈치코치로 주변사람 따라가다가 놓쳐서 엉뚱한 승강장 가서 기다리다가 버스 못 탈 뻔함.

  버스는 다행히 미니밴보다 큰 버스였고, 그래서 꽤 많은 사람이 탔다. 이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아 내가 왜 간다고 했지?' 싶었음. 남의 나라 명절 귀성길에 어디 감히 끼어보겠다고... 집 나온 지 4시간 만에 버스 탄 건데, 4시간이면 이미 후아힌 도착했을 시간이다 이 말이야.

 

 

날씨도 내 마음을 대변하는 거 같고

  중간중간 추적추적 비가 꽤 내렸다. 4월이 태국이 비가 올 시기가 아닌데 요즘 날씨가 좀 이상하다. 그리고 도대체 운전이 험한 건지 도로 사정이 너무 별로인 건지 중간에 한번 옆 사람 붕 떠서 앞으로 날아갈 만큼 차량 덜컹거림이 심했다. 하던 일 마치고 밤에 짐 싸고 아침부터 나오느라 잠도 거의 못 자고 나왔는데 버스에서 잠 한숨도 못 잤음.

 

  방콕에서 후아힌에 올 때까지는 생각보다 별로 안 막혔는데, 후아힌에 들어서서 엄청 막혔다. 거의 다 왔는데 도착 예정 시간이 자꾸 10분, 15분씩 늘어남... 도착하니 고맙게도 친구가 데리러 와줬다. 친구 커플도 만나서 인사를 나눴다. 사실 내가 아니라 R을 초대한 거고, 나와의 선약을 그냥 깰 수 없었던 R이 나를 곁다리로 불러준 건데도 나보고 와줘서 고맙다고 하는 친구 커플. 초대해 줘서 나야말로 고맙지. 내가 괜히 무리한 결정을 해서 그들의 단란한 휴가를 방해하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친구 커플은 B와 A라고 쓰겠음.

 

 

후아힌

  일단 짐을 놓기 위해서 숙소로 이동했다. 오토바이로 둘둘씩 이동했는데, 나와 R이 먼저 도착했고 B와 A를 기다리는 동안 숙소 주변을 좀 둘러봤다. 후아힌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는데 오히려 좋아. 운전자가 있으니 기동성도 있고, 여기가 훨씬 조용하고 좋은 데다가, 무려 바다가 바로 앞에 있다. 무슨 프라이빗 비치마냥... 이렇게 좋은 곳에 초대해 주다니. 진짜 나 같이 낯선 이가 같이 써도 되는 건가?

 

  짐도 좀 풀고 각자의 일정을 좀 보내다가, 저녁에는 송크란을 즐기러 나가보기로 한다. 사실 B와 A 둘만 있었으면 안 갔을 거라고 하는데, 강력한 자기주장하는 R과 묘하게 동조하는 내가 있어서 결국 다 같이 길을 나선다. 택시를 타고 갔는데 후아힌 시내에 들어서니까 미친 듯이 막힘.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가는데, 아마 후아힌의 핫플인 듯싶다. 송크란 즐기고 싶은 마음은 다 같은 거지.

 

 

  아래부터는 핸드폰 방수팩에 넣은 채 찍은 사진이라 화질구지 주의.

 

후아힌의 송크란

  길거리 가판대에서 물총 하나씩 사고 본격적으로 인파를 따라 걸어본다...라고 해봤자 송크란 때 방콕을 걷는 것에 비하면 정말 너무 널널한 거리. 송크란 때 번화가를 거니는 게 이렇게나 편안할 수가. 심지어 길에서 처음 본 사람한테 "물 좀 채워도 돼요?"라고 물으면 너무나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물총에 물을 무료로 채울 수 있다니... 방콕은 물총 한 번 채우는 데 최소 10밧씩 받는데, 후아힌 송크란 짱이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다 본 듯

  술이 좀 필요하다던 R이 편의점에 들어가더니 내 몫까지 술을 사 왔는데 그게 무려 태국산 소주.. 내 거까지 주길래 눈으로 "?????? 뭐 이거 마시라고???????"라고 말했으나.. 어느새 같이 마시고 있는 나.. 길에서 소주 병나발 불면서 다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ㅋㅋㅋㅋ

 

 

파우더와 물 범벅

  두어 시간 정도 여기저기 걸어 다녔고, 쫄딱 젖은 건 물론 얼굴과 상반신에 파우더도 덕지덕지 묻었다. 물총은 진짜 귀여운 수준이고 현지인들은 자기 가게에서 수도 끌어다가 호수로 물 쏘고 바가지로 퍼붓고 난리난리임ㅠㅠㅋㅋㅋㅋ 색파우더의 정체는 나중에 알았는데 밀가루라고 한다. 그래서 피부에 묻어도 큰 문제는 없을 듯. 다만 보다시피 옷이 좀 만신창이(?)가 될 수 있으므로 송크란 때는 밝은 색 옷이나 아끼는 옷 입고 나가는 건 비추고, 조금 망가져도 되는 옷을 입고 나가길 추천한다.

 

  돌아갈 때는 툭툭을 타고 갔다.

 

 

야식 소떡소떡

  신나게 놀고 났더니 출출해져서 편의점에 들러 야식거리를 샀다. 소떡소떡이 있길래 사봤는데 귀여운 양에 맛은 그닥.. 태국 편의점에서 한국 음식은 안 사 먹어도 될 것 같다. 씻고 나서 다들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새벽 1시쯤이나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방을 양보해 준 배려 덕분에 정말 편하게 잘 수 있었다.

 

 

 

2일 차

어디선가 많이 본 숙소

  방에서 본 숙소. 첫날부터 이 모습을 보자마자 네덜란드가 떠올랐다. 낮은 층의 건물에 지나가는 사람이 다 보일 정도로 큼직하게 나 있는 창. 문득 R에게 미국의 집은 어떻게 생겼냐고 물으니 아예 구글 스트릿뷰를 켜서 본인 어릴 때 살던 집을 보여준다. 빨간 지붕의 주택. 역시 서울의 집이랑은 많이 다르네.

 

 

아침 식사 하러 가는 길

  R이 봐둔 식당이 있다며 아침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R과 나, A와 B가 각각 바이크를 타고 길을 나섰다. 운전을 못하면? 운전을 하는 친구를 사귀면 되는 것이다. 하하.

 

  숙소도 식당도 후아힌 시내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위치한지라 달리는 동안 무척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훨씬 좋았다. 언젠가 후아힌에 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어서, 아마 이쯤부터 조금씩 꿈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미리 말하자면, 이 여행 때때로 좀 현실감이 없었다. 긍정적인 의미로.

 

  4명이 다 같이 여유롭게 얘기를 나누는 게 처음인데, 사람이 많아지면 말이 급격히 줄어드는 나로서는 이날도 있는 듯 없는 듯 청자모드에 돌입... 그래도 억지로(?) 말 시키는 사람이 없어서 고마웠다. 적극적으로 말은 안 해도 누구보다 잘 듣고 있다. 문제는 내가 전문인 얘기, 예를 들면 한국 얘기 같은 게 나와도 내가 적극적으로 끼지 않고 R이 대신 대답하는 지경이라는 거였지만😂

 

 

식당 인근 바다

  식당에서 조금만 걸어가니 거리 끝에 바다가 나왔다. 후아힌 시내 바다보다 한적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바다. 외국인은 거의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일단 우리가 외국인이고... 다른 외국인도 몇 있긴 했다. 작은 해변이지만 물놀이하기엔 완벽한 곳이다.

 

 

식당 인근 바다

  물이 진짜 엄-청 맑음. 후아힌 해변은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조금 떨어져 있다고 이렇게나 다르다. 물에 들어갈 일 없을 거 같아서 수영용품 하나도 안 챙겨 왔는데 아쉬워졌을 정도. 그런대로 발이라도 적셔본다.

 

 

음식 가판대

  바다 앞에 음식도 팔고 음료도 판다. 선베드도 있고 카페도 있어서 야외/실내 골라서 즐기면 된다. 일단 어떤 바다인지 확인은 했으니 숙소로 돌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오기로 한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인 것 같아서 위치를 남길까 말까 좀 고민했는데, 구글맵 보니 그렇게 숨겨진 곳도 아닌 것 같아서 나중에 내가 기억하기 좋으려고 남겨본다.

https://maps.app.goo.gl/FuNsxgQgrQ76SbPA7

 

หาดทรายน้อย · Pak Nam Pran, 후아힌 프라추압 키리 칸 태국

★★★★☆ · 해변

www.google.com

 

 

 

태국어 단어 쓰기 게임

  커피를 한잔 하러 갔는데 R과 B가 게임을 제안한다. 본인들이 자주 하던 거라며, 돌아가면서 태국어 단어를 말하면 철자를 정확하게 쓰는 게임인데, 틀리면 H, O, R, S, E를 써서 먼저 HORSE를 만드는 사람이 지는 거란다. 태국어 공부를 하다 말다 하는 나로서는 안 한 지가 또 한 두세 달 되어서 게임 안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 몫까지 종이랑 펜을 갖다 줘서 어쩔 수 없이 참여했고 제일 먼저 HORSE 채우고 꼴등 했다😂 심지어 내가 문제로 '한국(เกาหลี)' 내놓고 틀림..ㅎ

 

 

돌아가는 길

  그나저나 이렇게 좋은 곳에 초대해 주고 좋은 시간 보내게 해 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커피 정도는 내가 사려고 했는데, B와 A가 극구 말려서 못 샀다. 심지어 "이미 네가 여기 와준 게 우리한텐 선물이야" 같은 스윗한 말까지 해주면서. 우리 이제 겨우 초면이거나 두 번째 보는 건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너무나 감동...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은데 작은 보답을 허락하지 않으니 정말 몸 둘 바를 몰랐다. 아, 알고는 있었다만 나 받기만 하는 거 잘 못하네. 다음에 꼭 B와 A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다시 바다

  오후에는 잠시 각자 시간을 보내기로 해서 B와 A는 다른 곳에 갔고, 나는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R과 다시 바다로 왔다. R은 수영복을 챙겼고 나는 수영 생각은 없어서 다이어리를 챙겼다.

 

 

파라솔 아래서 칠칠

  테이블이 있는 선베드에 자리 잡고 일단 여유를 즐긴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R이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둘 다 집 떠나와 사는 비슷한 처지라서 타향살이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이고 R은 아직 돌아갈 계획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에 대한 생각 차이도 얘기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떨어져 사는 가족 얘기도 하고 등등. R이랑도 평소보다는 좀 더 깊은 주제로 대화를 했던 것 같다. 매번 장난스럽기만 한 줄 알았는데, 나름 착실하게 미래를 그리는 건실한 청년 같으니라고. 어차피 너 이거 안 읽지? 그러니까 막 쓴다.

 

 

꿍텃

  배고플까 봐 새우튀김을 시켰는데 야채튀김 반, 새우튀김 반인 음식이 나왔다. 맛은 뭐 쏘쏘. 사이다는 늦게 나오는가 싶더니 두 번이나 말해도 안 나와서 결국 마시지 못했다. 선베드도 이용료가 있었는데 인당 30밧이었다.

 

  다 먹고 R은 수영하러 간 동안 나는 잠깐 친구랑 통화도 하고, 이북도 읽고, 선베드에 눕듯이 기대서 낮잠도 자고 했다. 바다 앞에서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휴일이라니. 문득 이 순간도 무슨 꿈꾸는 것 같았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서로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사람이랑 부쩍 가까워져서 여행에 초대받고, 평소 같으면 거절했을 텐데 그걸 또 무슨 바람이 들어 따라와선 지금 이 순간 멍 때리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게. 이게 현실인가? 내가 태국에 처음 올 때는 이런 삶을 살 거라고 전혀 상상을 못 했던 터라, 이 순간이 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뭔가.. 이곳에서 내 경험이 풍부해지고 삶이 또 한 번 풍요로워지는 느낌.

 

  보통은 지나고 나서 그때가 너무 까마득해서 '아, 나 꿈꿨나?' 싶은데 아주 가끔 현실을 살면서도 상상도 못 해본 비현실적인 일이라 실시간으로 '아, 나 지금 꿈꾸나?' 싶을 때가 있다. 무슨 일에든 대체로 무던한 나로서는 살면서 몇 안 되는 순간들. 꽤나 생경한 느낌. 그만큼 꿈만 같았던 시간. 별거 안 했는데도 이때의 시간은 내게 매우 인상적이고 소중하게 남아있다.

 

 

바다 옆 사원

  숙소로 돌아가기 전, 바다 인근에 웬 산길이 나있길래 잠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초입이 생각보다 가팔라서 조금 애먹었지만 그리 높지 않아서 무난하게 오를 수 있었다. 꼭대기엔 사원 같은 게 있고, 불상도 있었다. 우리가 있던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건 덤. 내려올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데도 위협을 느낄 정도로 엄청 큰 거미를 봤다. 나는 기겁했고 R은 신기하다고 가까이서 사진 찍음.

 

 

로띠

  저녁을 어떻게 먹게 될지 몰라서 일단 사본 로띠. 지금 안 먹으면 야식으로 먹을 요량으로 샀다. 60밧.

 

 

숙소 앞 바다
마치 인피니티 풀

  숙소에 갔더니 B와 A가 이미 와 있었고, 이따가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시간이 될 때까지 B와 A는 잠깐 주변을 돌아보고 오겠다며 나갔고, 후발대로 나선 나와 R은 숙소 인근 바다에서 B와 A를 찾을 수 있었다. 수영장도 있고 그 뒤로 바다도 있어서 마치 인피니티 풀처럼 즐길 수 있는 이곳. 직접 수영을 하진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참 환상적이다.

 

 

저녁 식사

  저녁 먹으러 독일 식당에 갔다. '이런 곳에 독일 식당이 있어?' 싶었는데 사장님이 독일인이었다. 후아힌에 산 지는 10년 정도 됐고, 식당을 낸 지는 2-3년 되었다고 했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 진짜 옛날 독일 가정식 레시피를 본인이 이어받았다고 한다. 오랜만에 슈니첼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이 자리에선 인도 얘기가 나왔는데 여행 경험이 있던 A와 R이 서로 공감대를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이미 들은 대로 인도가 그렇게 쉬운 여행지는 아닌가 보다. 더불어 타밀어(Tamil)와 한국어의 유사성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B는 두 언어가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했는지 한국인은 타밀어도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했는데, 애초에 타밀어가 뭔지 몰랐던 나로서는 그 자리에서 검색으로 알게 됨.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언어 간 발음이 유사한 단어가 몇 있을 뿐 주류 학계에서는 크게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한 선생님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면 한국어랑 매우 유사한 표현들이 몇 들린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타밀어였나 보다.

 

 

시방 위험한 인간이여

  그건 그거고.. 여긴 여전히 송크란. 오늘 밤도 즐기러 나왔다. 시작부터 한 손에는 소주, 한 손에는 물총 들고 출발. 그러다가 문득, 한국에서 이렇게 다니는 사람 있으면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무조건 피했을 텐데, 지금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게 무척 현타가 왔다. 이게 맞아...?ㅋㅋㅋㅋㅋ 근데 놀라운 건, 길거리에 이렇게 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는 것. 소주의 인지도가 높아진 건지, 맥주는 안 취하고 배부르다고 생각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길거리에 소주 병나발 부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건데ㅋㅋㅋㅋㅋㅋ

 

  근데 우리 기대랑은 달리 의외로 첫날보다 거리에 사람이 적고 이벤트도 덜했다. 그래서 조금 아쉬울 뻔한 차에, 워킹스트릿 같은 곳은 여전히 핫했고, 전날 물총을 두 개나 해먹은 R이 파우더를 사면서 친히 우리에게 발라줘서(^^) 전날과 다름없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놀았다.

 

 

 

3일 차

아침 식사

  이틀이나 새벽에 잠드니 다들 너무 피곤해서 느지막이 일어나서는, 바이크 반납 시간 다 되기 전에 커피 한 잔 하러 가고 싶다며 카페 겸 아침식사가 가능한 곳으로 갔다. 여기 와서까지 수첩에 적어가며 태국어 공부하는 R 보고 진심으로 리스펙 함. 이러니까 HORSE 게임에 그렇게 자신이 있었구나? 나는 오늘도 해장이 필요해서 국물이 있는 카오똠 한 그릇 했다.

 

  다 같이 모이기만 하면 내가 하도 조용해지니 B가 "너도 언제든 대화에 참여해도 돼, 알지?"라는 말을 한다. 응 당연히 알지.. 그동안 나온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이 궁금하단다. 전혀 부담스러운 뉘앙스는 아니었고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물어봐줘서 오히려 고마웠다. 어쩌다가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 낮은 출산율, 높은 식료품 물가' 같은 어려운 얘기를 하게 된 게 또 내 짧은 영어를 아쉽게 했지만 말이야. 하여튼 따뜻한 배려가 너무나 느껴지는 참 스윗한 사람들이다.

 

 

다시 방콕으로

  얘기가 한참 무르익어갈 때쯤, 바이크를 반납할 시간이 다 돼서 조금은 아쉽게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대로 숙소에 가서 가방만 들쳐 맨 뒤 R과 나는 길을 나섰다. B와 A는 며칠 더 있을 예정이라, 나중에 방콕에서 다시 보자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아슬아슬 제시간에 R이 바이크를 반납했고, 그대로 방콕행 버스 티켓을 샀다. 다행히 사람이 몰릴 때도 아니었고, 도로도 생각보다 안 막혀서 무난하게 탑승해서 귀가할 수 있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여행이 다 있나 했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무수히 들었던 여행. 내 태국 생활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R 고맙고, 상대적으로 낯선 사람도 흔쾌히 초대해서 따뜻한 배려 보여준 B와 A도 고맙고, 하여튼 다 감사하다. 태국에서 적지 않은 여행을 다녔지만, 나 이 여행은 정말 잊지 못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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