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쉬고 있을 때 E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금요일에 무엇을 하냐는 질문에 딱히 계획은 없다고 하니 드라이브를 하러 가자는 제안을 해줬다. 이 무렵의 나는 더더욱 기분전환이 필요했을 때라 언니의 제안이 너무 반가우면서 고마웠고, 냉큼 수락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저번에 계획했다가 다 못 가본 강화도 루트를 이야기하니 언니가 괜찮은 코스래서 강화도로 결정! 못 가본 곳들이 아쉽긴 했지만 대중교통으로 다시 갈 엄두가 도저히 안 나서 올해 다시 강화도를 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언니 덕분에 올해 세 번째 당일치기를 했네!
아침에 중간지에서 만나 언니의 픽업을 받고 강화도로 출발했다. 대중교통으로 왔다갔다 할 땐 편도 3시간이 넘었는데 차 타고 오니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던 것 같다. 자차 만세...
가는 길에는, 지난번에는 왜 강화도를 다 못 돌아봤냐는 질문에 대한 썰을 풀다가 언니한테 아주 혼났다😂😂 저도 그때 반성 아주 많이 했어요... 이제 여행지에서 겁대가리 없이 안 굴 거예요...
점심때쯤 강화도에 도착했기에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지난번 방문 때 정말 와보고 싶었는데 조금 어이없게 못 왔던 서령을 데리고 왔다. 언니는 예전에 자매들이랑 같이 먹었던 (아마) 평래옥 이후로 두 번째로 먹는 평양냉면이라고 했다.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으니 비빔냉면도 시키고, 오늘은 드디어 일행이랑 같이 먹으러 와서 곁가지 메뉴인 만두도 시켜본다. 음식에 아주 자부심이 있는 사장님 덕분에 맛있게 뚝딱 잘 먹었다.
서령 후기 자세히 보기:
서령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전등사. 어른 4,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주차비는 일괄 2,000원이다. 블로거를 위해 친히 표를 들고 사진 찍으라며 기다려준 E언니ㅋㅋㅋ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절 엄청 오랜만인 것 같다.
삼랑성(정족산성)에 위치한 전등사에 가기 위해 남문을 통한다. 본래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남문과 동문만 사용 중이다. 전등사는 강화도 내에서 가장 큰 사찰이며 사람이 꽤 많이 찾는 곳인데, 평일이라 그런지 다행히 조금은 한적했다.
올라가는 길에는 여느 산아래처럼 막걸리 파는 집들도 많은데, 평일 낮이라 그런지 몰라도 문을 연 곳이 많지 않았고 생각보다 활기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대중교통으로 왔을 땐 전등사 아래에서 인삼막걸리 마셔보려고 했었지.
조선 중기, 광해군 13년에 지어진 목조 양식의 건축물 대웅보전이다. 이날은 개방을 하지 않는 듯했다.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듯한 나부상도 전등사 대웅보전의 유명한 포인트 중 하나이다.
템플스테이 때 조금 배웠다고 이젠 종뿐만 아니라 사물이 다 눈에 들어온다. 전등사의 범종은 109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물 제393호인데 이는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고, 사진 속 범종은 비교적 근래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전등사 경내가 예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 사진 찍는 내 모습을 열심히 찍어준 E언니ㅎㅎ 이 장독대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일단 찍는 척이라도 해보래서 열심히 폼 잡고 있었더니 내 사진을 더 예쁘게 남겨줬다📸
단풍이 한창때까지는 아니었지만 군데군데 여전히 색으로 존재감을 뽐낼 때였다. 봉선사 때부터 느낀 거지만, 단풍 예쁘게 든 가을에는 산에 있는 절을 가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 같다.
이쯤 구경 후 단풍 뒤로 보이는 절 내 찻집, 죽림다원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조금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카페'보다는 그야말로 '찻집'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이곳. 일단 메뉴 자체가 커피 메뉴가 거의 없다. 라떼도 없어서 살짝 실망할 뻔하다가, 절에 있는 찻집이니 이참에 다른 거 마셔봐야지 하는 맘으로 연잎차를 주문했다.
찻집을 꾸미는 소품들은 인테리어 소품이기도 하고, 판매 중인 것들도 있었다. 불교용품도 몇 있었는데 소소하게 준비된 게 오히려 눈에 띄었다.
바닥에 보일러 뜨끈하게 나오는 좌식 테이블에 앉아서 여유롭게 차 한 잔. 절에서는 역시 연잎차 한 잔 마셔줘야지.
이후에는 사진은 없지만 죽림다원에서 멀지 않은 무설전 및 서운갤러리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절도 올리고, 갤러리 내 작품도 잠깐 보았다. 요즘 나랑 절 가는 사람 나 때문에 절 한 번씩 올리고 나와야 함..ㅎㅎ 누차 말하지만 불자는 아니고 그냥 불교를 철학으로서 좋아하는 1인 정도 됩니다.
알록달록한 가을의 색만 보다가 이렇게 푸릇푸릇한 상록수 색을 보니 또 좋다. 산성은 산성인지 저 멀리 강화도의 모습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온다.
정족산성까지 왔으니 막간 한국사 지식을 떠올리며 양헌수비를 찾아 걸었는데,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아무리 가봐도 나오지 않아서 포기... 그저 사진 몇 장을 더 남겼는데 E언니가 찍어준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결국 블로그 프사도 바꿨다는 사실~ 전등사는 생각보다 큰 곳인 것 같다.
강화도 남부, 정족산 삼랑성에 위치한 전등사
이후엔 동막해변을 가려고 하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서 다른 곳은 어디 없을까 검색해보던 중, 북한이 보이는 월곶돈대라는 곳이 북부에 있다고 하여 계획을 급 변경하였다. 드라이버 E언니 덕분에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압도적 감사..!
북한이 보이는 곳이라더니, 검문소를 하나 통과해야 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듯했다. 위성사진은 결코 안 뜨던 강화도 북부가 군사지역이라는 게 실감이 나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월곶의 물길 모양이 제비꼬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이 정자의 이름이 연미정이 되었다고 한다. 정묘호란 때 인조가 후금과 굴욕적인 강화 조약을 맺은 곳이기도 한 곳. 영조, 고종을 거쳐 여러차례 보수되었다고 한다. 한국사 공부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가물가물하고 이거 참.
망원경 같은 거 없이도 건너편에 북한이 떡하니 보인다. 철조망 같이 시야에 거슬리는 것도 없다. 눈앞의 강 하나 건너면 북한이라니, 이렇게나 가깝다니.
다만 사람 사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산일 뿐이고, 그마저도 수풀도 안 보이는 회색빛 민둥산이 보이는 경우도 많다. 고작 강 하나를 두고 이렇게나 생경한 풍경이라니.
반면에 남한의 풍경은 집도 많이 보이고 왠지 더 사람 사는 느낌이 든다. 바다도 아닌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나 다른 삶을 살 수가 있나. 북한 사람들은 집도 많고 활기차 보이는 남한의 모습을 보면 과연 무슨 생각이 들까.
연미정 옆에는 약 500년가량의 오랜 역사를 지닌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2019년 태풍 '링링'으로 인해 부러져버렸다고 한다. 강화 8경 중 하나였던 데다가 그렇게나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나무였는데 참 아쉽다.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본 뒤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강화도 북부, 강화대교에서 가까운 연미정
이날은 하늘이 참 하루 종일 예뻤다. 달리는 차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언니가 일부러 천천히 가주기도 했다. 정말 언니 덕분에 편하고 즐겁게 잘 놀았던 하루!
서울 출발하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서 주전부리를 몇 가지 샀다. 팔도 비빔칩 버터간장맛이라니 신상 과자는 못 참지! 그냥 버터맛 살짝 나는 콘칩 맛이었다. 기대한 거에 비해선 쏘쏘..
집에 갈 때는 강화대교를 통해 빠져나갔는데, 차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막혔다. 시간 맞춰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분명 여유 있게 출발했다고 한 건데 중간에 시간이 너무 촉박해져서, 언니가 원래 데려다주고 싶었던 곳까진 못 가고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서울 지하철역 아무데서나 떨궈줘도 나야 감사하지! 앞으로 강화도 오갈 때는 차가 막힐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겠다.
덕분에 하루가 참 길고 알찼던 날. 지난번에 못 했던 것들 다 하고 와서 한도 풀었다. 이걸로 적어도 2021년 강화도 당일치기 여행은 정말로 끝!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기분 전환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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